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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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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2-29 19:27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1,793
김오석 라이문도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루가 2,29-30; 34)

 


평생 성전에서 기도하며 하느님 구원을 노래하던 노인 시메온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율법의 규정을 채우기 위해 성전에 온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은 시메온의 감사와 찬양이다. 감격적인 장면이다. 시메온은 성령의 인도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보았다. 평생을 두고 기도해 온 자신의 소망을 성취했다.

 


오직 올바른 일과 기도에 전념하면서 단 한 시도 잊지 않고 기다려 온 구원자를 만난 시메온의 솟구쳐 오르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오늘 복음을 봉독하면서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떨리는 손으로 예수님을 받아 안은 시메온이 바로 자신인 것처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했던 성탄이 며칠 지나지 않았다. 우리의 기쁨과 감동이 시메온의 기쁨과 감동과 맞먹을 정도였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평생을 손꼽아 기다린 기다림과 기다리는지 아닌지조차 애매했던 우리들의 태도가 같은 무게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있었던 성탄이고, 또 내년에도 있을 성탄이라는 단순한 연례행사의 반복 정도로 이번 성탄을 맞이했다면, 초라하고 냄새나는 구유에 뉘여진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일어날 감흥이란 도대체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의 출세와 재물의 축적과 사회적 지위에 골몰한 마음으로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을 나의 구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 받는 표적이 되어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내실 메시아가 인간의 세상에서 밀려나 짐승들의 거처에서 가난하고 초라하게 태어났다. 이 현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그분을 알아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삶도 구유에서 다시 가난하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꺼워하는 사람이다. 구유의 가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멀리하려 애쓰는 사람은 수백 번의 성탄을 맞더라도 가슴 뛰는 구원의 환성을 올릴 수 없다. 예수님을 품에 안은 시메온의 감격을 느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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