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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6-01-05 22:24

주님 공현 후 수요일

2,448
김오석 라이문도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마르 6,48)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하는 대상과 더불어 함께 있고 싶어 한다. 하느님은 늘상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시고, 다가오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건네주신다. 딴청을 피우거나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다 그분이 다가오심을, 그분이 나와 함께 있음을, 그분께서 나에게 건네주시는 사랑을 붙들지 못하고 고독한 인생살이를 하는 바보들이 많다.

 


날은 저물고 배는 이미 호수 한 가운데 떠있고, 바람은 역풍이다. 배의 방향을 잡고 목적지로 이끌어야 할 선장은 배에 없다.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한 배에 탄 운명공동체이면서도 각자의 주장만 내세우며 분열된 힘으로 노를 젓고 있다면 배의 운명, 공동체의 앞날은 바람 앞의 촛불이다. 그야말로 위기의 상황이다.

 


눈앞에 닥친 일에 매몰되어 예수님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예수님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나 나그네에 불과할 뿐이다. 제자들의 어려움을 감지하고 서둘러 제자들을 향했던 예수님도 그냥 그들 곁을 지나치려고 했다는 오늘 복음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상황이 그렇다.

 


제자들은 가까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분을 맞아들이기는커녕 유령을 보는 듯 비명을 질러댔다고 하니 한심할 뿐이다. 자신의 고정된 선입견에 매여 있거나, 당면한 현실의 고난과 씨름하느라 여유를 잃어버린 그런 사람이나 공동체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얼뜨기 눈먼 이들의 집단이 되고 만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실은 예수님의 자리가 없는 개인이나 공동체, 예수님을 꼭 필요로 하면서도 예수님보다는 물신에 더 기울어진 공동체, 예수님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도 현실의 모든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공동체는 이미 깨진 쪽박이고, 구멍 난 쪽배일 뿐이다. 예수님도 가까이 오셨다가 분명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 것이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은 그들에게 유령이나 바람에 흩날리는 흰 헝겊조각에 불과하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갑작스런 나타남은 비명 밖에 낼게 없는 두려움과 공포일뿐이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 6,49) 우리에게 위로와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이시다. 바람을 멈추고 풍랑을 가라앉혀 원래의 평상으로 되돌리시는 분이시다.

마음이 무디어서, 아직 눈이 뜨이지 않아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자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이 그냥 지나쳐 가시지 않도록 해야겠다. 예민하고 열려 있는 마음으로, 우리 삶의 고난을 함께 하려고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반갑게 맞는 오늘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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