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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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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6-01-06 23:01

주님 공현 후 목요일

1,844
김오석 라이문도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은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18-19)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1)

 


광야에서의 유혹을 물리치고 당신의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세상을 향해 던지신 당신의 출사표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빌려 당신의 소명을 선언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말로 당신의 소명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가난한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이 풀려나고, 장님이 눈을 뜨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하는 것이 당신의 소명이라는 말이 어려운가?

 


하느님 창조의 결실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소수의 독점과 축적의 결과로 결핍된 처지에서 소외되고 배척되는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안타까움은 예수님을 통해 우선적 사랑의 대상으로 가난한 이들을 편들 수밖에 없도록 이끌었다.

잡혀간 이, 눈 먼이, 억압받는 이들에 대한 자유와 해방은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명백한 가치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을 믿음의 본질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눈 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을 찾고 그들 편에 서는 구체적인 나의 삶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은 신앙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된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1) 우리가 서있어야 할 곳은 이웃과 형제들의 옆자리이다. 그것도 가장 보잘 것 없고 핍박받는 의지 가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곁이다. 그들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고 그들의 고뇌가 나의 고뇌가 되는 연민과 공감이 사랑의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들이 맨몸으로 맞고 있는 세찬 빗줄기를 나도 함께 맞아주는 일이다. 나의 우산을 고이 접고서 말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란 형제들 안에 함께 살아 숨 쉬는 하느님의 숨결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소명을 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된다.

매 미사 때마다 성체를 받아먹고 예수님과 하나 되어 내 삶의 자리로 향하는 나는 이 세상에 또 다른 예수님으로 파견됨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 사랑을 심는 예수님의 손과 발, 그분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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