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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3-08 21:45

사순 3주일

1,982
김오석 라이문도

“이 성전을 허물어라!”(요한 2,19)


이윤을 위해 장사하는 장소가 되어 버린 성전, 지배계층의 착취와 탐욕만이 넘쳐대는 성전, 가난한 이의 서러움과 울부짖음이 메아리치는 그런 성전은 허물어야 한다.

하느님을 팔아 배를 불리는 작자가 행세하는 그런 성전은 성전이 아니라 시장바닥에 불과하다.

제물용 짐승을 파는 장사꾼들의 좌판과 환전상들의 돈과 탁자가 뒤집어 엎어졌다. 거룩한 분노를 드러내신 예수님의 채찍질에 모두가 다 풍비박산이다.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는 듯하다.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이 열정으로 불타오른다. 통쾌하다.

 

“성전을 허물어라.”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성전은 그들 삶의 중심이었고, 비록 먼 객지나 타향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명절이 되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하느님이 계신 곳을, 내 삶의 중심이던 성전을 헐어버리라니!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의 뿌리를 흔드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하고 분명하다.

 

“성전을 허물어라!”

네가 애지중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것, 삶의 중심이 되어왔던 모든 것을 헐어버리라는 것이다.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 그 것을 놔버리라는 말씀이다. 배움과 경험으로 일평생 정립된 결코 놓아버릴 수 없는 주장이나 생각일지라도 다시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 하느님을 중심으로 그분께서 원하는 방식으로 새로 탑을 쌓아보라는 것이다. 인생관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재정립 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바로 이 사순시기에 우리가 몰두해야 할 묵상거리요 수련의 내용이 아닐까?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나의 마음 안에 간직된 죽었으면 죽었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인가? 내 삶의 중심이 되어 왔던 성전은 무엇인가?

오늘은 사순 제 3주일이다. 장사꾼들과 환전상으로 대변되는 착취와 죄악에 거룩한 분노를 드러내시며 채찍을 휘두르시는 예수님의 채찍이 우리의 심장을 찌르고 골수를 가르는 날카로운 비수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아울러 내가 얼마만큼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왔는지, 또 헐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나는 과연 거룩한 분노를 드러낼 용기가 있는지를 함께 묵상하며 사순 제 3주간을 지냈으면 좋겠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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