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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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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6-01-08 23:52

주님 공현 후 토요일

1,990
김오석 라이문도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라틴어로 겸손humilitas(후밀리따스)라고 한다. humus(후무스: , 대지)에서 온 말이다. 겸손이란 땅과 같고 대지와 같다는 뜻이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하여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모든 것을 어머니인 대지의 마음으로 품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의미라 하겠다. 겸손이라는 대지 위에서 사랑도 자라고, 믿음과 소망도 자라고, 정의도 자란다. 겸손이라는 바탕이 없으면 모든 것은 다 거짓이요 위선이다.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의 참 모습은 겸손함에 있다. 예수님과 같은 시기에, 아니 예수님 보다 먼저 회개를 위한 세례 운동을 펼쳐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자신들이 기다려온 구세주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베푸시는 예수님께 가고 있는 현상을 보고 요한의 제자들이 드러내는 의구심에 대해 세례자 요한이 주는 답변에서 그의 겸손함과 자신의 정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는 말씀이다.

 


누구보다도 존경받은 인물이었지만 이름 없는 목수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고 말한 이가 요한이었다. 오만하고 건방진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것은 동정이 될 수는 있어도 사랑은 아니다. 오만한 사람은 자기의 힘과 능력 외에 다른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소망을 가질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오만한 사람이 이루는 정의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겸손을 자기비하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겸손은 정직한 자기 바라봄에서 나오는 자기 비움이다.

 


겸손은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겸손은 자기에게 닥쳐오는 모든 것을 인내로 품어주는 일이다. 겸손이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 모습을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고 변명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나무처럼,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태도다.

 


정직한 자기 바라봄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겸손에서 타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비난하고 비판하기 전에 타인의 가난함과 부족함에 연민을 간직할 수 있고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이것이 사랑이다. 겸손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려면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해야 한다. 남을 진실로 인정하는 전제는 나를 본연의 모습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겸손의 태도다. 모든 것을 품어 안는 대지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겸손은 사랑을 키우고 기적을 이루는 시작점이다.

 


자신의 뒤에 오는 예수님께 온전히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은 작아지는 요한의 정직한 바라봄과 비움의 태도를 통해 충돌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겸손의 덕을 닦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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