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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6-01-12 23:46

연중 1주 수요일

1,846
김오석 라이문도

다음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마르 1,35)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열병을 앓고 있는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시고, 몰려드는 온 고을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신 예수님께서 조용히 외딴 곳으로 물러나 기도하신다.

 


마르코 복음의 첫 부분은 예수님의 일상이 어떠하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연민을 간직하고 당신의 사랑을 쏟아내는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려준다. 어떤 사람들 곁에 머무르셨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활동의 원천은 다른 것이 아니라 홀로 고요히 머무름, 즉 하느님 아버지와의 내밀한 대화로서의 기도임을 당신의 행동으로 증거하고 계신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답답하고 정신이 없다. 정치권은 자신의 이익과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고, 북쪽에서는 핵실험을 하며 도발하고, 남쪽에서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하며 일촉즉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경제는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주식시장은 요동을 치고 있으며 서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각자 자기 목소리를 높일 뿐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에 브레이크가 파열된 형국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용히 머무를 줄 모르기 때문이다. 능률과 효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회, 무엇이든지 능력과 힘으로 결정지으려는 가치관이 팽배해 기도란 무식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어리석은 행위로 치부된다. 기도한답시고 쪼그리고 앉아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그 시간에 실력을 쌓는 것이 훨씬 실질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을 우러러보지 않아서 하늘의 소리를 듣지 않는 자에겐 이웃의 음성이 귀에 와 닿을 수 없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이유는 하늘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서이다. 소경과 귀머거리들이 모여 자기 소리만 외쳐대면 시끄러운 소음만 난무할 뿐 해결책은 없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사람이셨다. 조용히 외딴 곳에 홀로 머무르시길 즐겨하셨다.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새김으로 당신의 모든 말과 행동의 길잡이로 삼으셨다.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과 사랑과 두려움 없는 헌신은 바로 기도를 통해 건져 올린 구원의 도구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구세주가 되셨다.

 


오늘은 홀로 조용한 곳으로 물러나 하늘의 소리를 들어보아야겠다.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늘을 우러러보게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그래서 모든 이가 서로의 말을 알아듣고 마음을 볼 수 있게 되어 다름 가운데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되기를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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