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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6-01-15 22:56

연중 1주 토요일

1,732
김오석 라이문도

예수님께서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르 2,14)

 


일반적으로 레위는 마태오라는 세리로 알려져 있다. 당시 세리란 식민지배자인 로마로부터 세금 징수를 청부 맡은 사람, 곧 세금징수원이었다. 정한 액수보다 더 많이 거두어들여 차액을 착복하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였기에 율법을 어긴 도둑으로 취급받았다. 또 이방인에게 협력한다고 해서 민족의 반역자로 따돌림 받았다. 결국 세리는 죄인으로 낙인 찍혀 살면서 돈 밖에 모르는 탐욕스런 인간의 대명사로 취급되었다.

 


부정한 수단과 방법으로 돈을 버는 데는 성공했지만, 주위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혐오의 대상이 되었으며, 자기가 번 돈을 가치 있게 쓸 줄 몰랐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베풀 줄 모르는 인색한 사람이었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다는 의미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영적인 투쟁을 포기한 채 세상 것에만 집착하고 있는 영적인 상태를 상징한다. 쾌락, 안일함, 게으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움을 향한 도전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반복되는 일상의 익숙함에 중독되어 있음을 말한다.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는 하느님나라와는 멀다. 익숙한 죄악의 일상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 걸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따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초대이며 명령이고 부름이다. 예수님은 레위가 먼저 일어나 걸어가기를 원하셨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익숙한 일상을 박차고 자리를 털고 예수님을 따르는 첫 걸음을 떼어야 한다는 것이다. 레위가 예수님의 부름을 들었다는 것은 축복이다.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공허와 무의미로 가득했던 지난 삶을 전환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 똑같은 부르심의 축복이 오늘 이 복음을 듣고 묵상하는 당신에게도 분명히 주어진다. “나를 따라라!”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오늘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귓가에 들리는 환청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이웃의 아쉬움과 목마름과 아픔으로 다가온다. 도움을 청하는 바로 옆 사람의 난처한 얼굴로 다가온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삶은 이웃과의 만남에서 내가 무엇을 듣고 어떻게 응답하느냐로 판가름 난다.

 


예민하게 듣고 세심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해 예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오늘을 살았으면 한다.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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