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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6-01-27 22:24

연중 3주 목(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1,887
김오석 라이문도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 4,24-25)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는다는 말이, 돈 십 만원 꿔주면, 원금 십 만원에 이자를 더해 되돌려 받는다는 돈의 속성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 내 것은 없고 모두 하느님의 것이라는 깨달음 안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은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너에게 주는 것이다. 네가 나에게 되돌려 주는 것 역시 하느님께서 너를 통해 나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모두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결국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은 내가 나에게 원금과 덤을 더해서 주는 것인데 그것을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너에게 주는 것이 실상 나에게 덤을 더해 주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나와 너 사이에 물질이 흐르고 마음이 흐르는 것은 나와 너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필요한 것은 이웃의 어려움을 연민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웃을 향한 연민은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된다. 알쏭달쏭한가? 찬찬히 읽어보면 이해 가능하다.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말씀은 빈익빈부익부의 현상을 두둔하는 말인가? 부자가 더 많은 돈을 가진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해진다고 해서 꼭 더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데 동의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랑을 충만히 간직한 자 더 사랑 받을 것이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자는 오히려 더욱 미움 받을 것이다. 용기 있는 자는 더욱 용감해질 것이며, 용기 없는 자는 더욱 비겁해질 것이다. 베푸는 자는 더욱 베풀 수 있는 조건이 이뤄지기 마련이고 움켜쥐는 자는 결국 썩고 말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매일 젖소에게서 우유를 짜 먹었다. 한 달 후에 손님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열기로 하였는데, 매일 우유를 짜서 보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한 달 동안 우유를 짜지 않고 젖소의 뱃속에 모아두기로 마음먹었다. 잔칫날이 되어서 그동안 모아둔 우유를 짜려고 했으나 젖소의 젖이 말라버려 한 방울의 우유도 나오지 않았다.

 


수면이 해저 392m인 사해에는 물이 흘러들어 갈 뿐 흘러나가지 않는다.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는 사해는 글자 그대로 생명체가 없는 죽음의 소금바다다.


분하게 모은 다음에 베풀겠다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어진다. 그것이 자연의 원리이고 하느님의 법이다. 탐욕이라는 호수는 들어가는 입구는 있어도 나가는 출구가 없어서 썩기 마련이다. 생명이든 재산이든 시간이든 나누지 않으면 썩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 나누는 것보다 늘 더 풍성하게 채워진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믿는 사람에게 복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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