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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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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3-10 07:15

사순 3주 화요일

2,092
김오석 라이문도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핵심은 용서의 횟수가 아니다. 성서에서 7은 완전함을 의미한다. 완전함에 완전함을 보탠다는 것(77번)은 용서는 한계나 횟수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용서가 한량없기에...

 

용서한다는 것은 때로 먼저 손을 내밀거나 무릎을 꿇는 무조건의 수용을 동반하기에 굴욕적인 느낌이 순간적으로 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인간의 위대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아무나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한량없는 용서를 받고 있음을 절절히 느끼는 사람만이 참되게 용서할 수 있다.

 

사람들이 겪는 불행의 대부분은 남의 탓으로 시작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옹졸함에서 시작된다. 용서는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결국 죽여야 하는 처절한 아픔으로 다가오기 쉽다. 용서는 희생이고 십자가이고 사랑이다. 예수님은 죄 많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참사랑은 용서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한다 해도 가슴에 미워하는 사람이 남아 있다면, 그는 아직 완전한 사랑에서 멀다.

 

누가 당신을 괴롭히고 해꼬지 하나요? 누군가가 못 견디게 싫고 미운가요? 냄새나는 쓰레기, 썩어가는 오물을 가슴에 담고 살지 마세요. 버리지 않으면 그 독소가 나의 육신을 썩게 하고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주님, 제 마음에 남아 있는 그에 대한 미움의 찌꺼기를 없애주시고, 그가 당신의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이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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