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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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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3-13 01:26

사순 3주 금요일

1,965
김오석 라이문도

사순 3주 금요일


"첫째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29-31)


우리가 사랑할 때 사랑은 언제나 방향을 지닙니다. 그 사랑의 방향은 세가지입니다.
첫째가 바로 나에게서 또 다른 내 안의 나에게로 향하는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사람의 사랑은 위선에 가깝습니다. 자기 사랑없는 사랑은 십중팔구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적 행동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지나쳐 이기적 자애심에 빠져서는 곤란합니다. 자기를 향하는 사랑은 나의 전 존재가 온전히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감사에서 우러나는 자아 존중감이요, 자아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능력이 뛰어나지 않고, 미모도 그렇고, 죄악에 쉽게 물드는 연약함과, 재산도 별로 없음을 한탄하며 열등감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 서 사랑하시는 나를, 나 스스로 개골창에 쳐 넣어서는 안됩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말해보십시오. “나는 나를 정말 사랑한다.”


두 번째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변할 수 없는 최고 걸작품입니다.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숨쉬고 살아감이 하느님의 사랑 때문임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을 향해 감사와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는 바로 하느님께 드려야 할 영광과 찬미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깨달음에서 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므로 너무나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바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자 하나 사랑할 시간이 없습니다.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문제는 정성입니다. 우리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권세와 명예를 얻는데 노심초사하는가, 아니면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나의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다른 일을 하려드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노동하고 땀흘리면서 동시에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을 향한 정향된 나의 사랑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표지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늘 기도하십시오. 정성을 다해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시간을 내어 사랑하는 그 분과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용기를 내십시오.


세 번째 사랑의 방향은 나로부터 이웃을 향하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늘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 실천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나의 구체적은 사랑은 결국 이웃에게 귀결됩니다. 그 이웃은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 힘없고 약한 사람, 소외되고 미움받는 사람입니다.


오늘 저는 구체적인 우리의 이웃으로 여러분의 가족을 제시합니다. 술 주정하고 독선적이며, 속물같은 여러분의 아버지를, 남편을 이해하고 용서하십시오. 수다스럽고 촌스럽고, 잔소리만 잔뜩 늘어놓는 여러분의 어머니를, 아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이젠 병들어 거동도 못하고 짐스럽게 여겨지는 노부모님을 따스하게 대하십시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노는데만 정신을 팔고, 늘상 사고만 치는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참고 기다리며 헌신하는 우리의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하고 세상을 바꿉니다.
인생은 미워하고 다투고 화내며 살기에는 너무나 짧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삶이 향기롭고 아름답습니다.
"보라! 그들이 어떻게 사랑하는지!" "하느님이 그들 한가운데 현존하신다! 하느님이 발생하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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