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3-15 02:08

사순 4주일

2,180
김오석 라이문도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 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요한 3,19)


가슴을 찌르며 다가오는 말씀이다. 왜 사람들은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할까?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할까?

 

사순절에 추구하는 회개의 삶이란 인간이 창조 본성을 되찾아야 함을 말해 준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지어내고 인간을 빚어내던 바로 그 순간의 조화와 충만함이 창조 본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악의 어둠을 벗어버리고 빛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자신의 죄상을 빛 가운데 폭로해야 한다. 죄악의 본질은 빛을 싫어 한다. 불의하고 부도덕한 짓을 공개적으로 할 수는 없다. 항상 남이 안보는 데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이다. 그러고 나서 못된 행실이 드러날까 봐 은폐하고 축소 조작한다.

떳떳하고 공정하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죄를 짓고 그 추한 것을 감추고 어둠 속으로 기어드는 것은 이미 원조 아담과 하와가 그 모델이다.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당부했던 그 열매를 먹자마자 취한 첫 번째 행동이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 다음에 나무 그늘 밑으로 숨는 것이었다. 그때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하고 하느님께서 찾으셨죠.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찾아온 니코데모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먼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후에 오늘 복음 말씀인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당신 십자가의 신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세례와 십자가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서 물에 잠긴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어 무덤에 묻히는 것을 의미한다. 죽지 않고서는 새로 태어날 수 없다. 과거의 나, 어둠에 물들어 찌그러지고 때가 묻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땅속에 묻어버려야 새로 태어날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난다는 말은 아기가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는 것을 말하는데, 참으로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태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탯줄을 잘랐을 때 태어나는 것이 완결된다. 그런데 탯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영양분을 공급 받았던 아기의 생명줄이었다. 생명줄을 끊어야 새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과거에 매달렸던 생명줄을 끊어야만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죽어야 산다.’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사순절의 중간 시점에서 참으로 우리가 잘라내야 하는 지난 시절 나의 생명줄과 같은 것은 무엇인가? 어두운 엄마의 뱃속에서 광명천지 새 세상에 탄생한 아기처럼 우리가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 벗어버려야 할 어둠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세례성사로 빛을 받았다. 그러나 세례성사의 그 빛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그런 빛으로 남아 있는가? 혹 우리가 발산하고 있는 것이 빛이 아니라 칙칙한 어둠은 아닌지. 사순 시기는 우리 안에 어둠이 있음을 자각하고 그 어둠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바꾸고 채우는 기회와 변화의 때다.

그것은 온전히 자신을 열어젖히고 어둠의 뿌리를 드러내는 진실한 고백성사를 통해 가능하다. 내 마음 속 깊이 뿌리내린 죄의 뿌리, 어둠의 뿌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죄악과 어둠은 견디지를 못하고 스스로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은 우리의 상처를 감싸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신다. 오늘도 십자가에 양팔을 벌리고 계시는 예수님처럼 우리가 당신 품으로 달려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시는 사랑의 바다이시다.

 

찌꺼기가 남아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 사랑의 바다에 뛰어들지 못한다.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성당에 나오면서도 이방인처럼 주변만 어슬렁거리며 겉돌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피서하러 바닷가에 가서 수영은 하지 않고 모래성만 쌓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덜 떨어진 사람일 것이다. 몸에 걸친 겉옷 속옷 모두 벗어버리고 풍덩 바다에 뛰어들어야 바닷가에 간 보람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느님 은총의 바다, 사랑의 바다에 풍덩 빠져 마음껏 그 포근함과 따스함을 느끼고 싶지 않나요?

 

하느님을 배신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구리 뱀을 바라봄으로써 생명을 얻었던 것처럼 나의 어둠과 약점과 부족함을 드러내고 고백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어야 한다. 그리하여 세례 때의 순수하고 아름답고 조화로운 모습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다면, 이 사순절은 우리에게 분명 은총의 시기가 될 것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