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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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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3-18 07:23

사순 4주 수요일

2,149
김오석 라이문도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오늘 복음은 이 때문에 유다인들이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5.18)고 전한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한 존재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자신들의 지식과 전통, 고정관념에 갇혀서 새로운 것을 볼 눈이 멀어 버렸다. 드러난 것 이면에 감추어진 영적 의미를 간파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드러내는 예수님을 좀 더 주의 깊게 바라보고 경청했어야 했다.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나의 생각과 주장과 가치관은 어쩌면 절대적으로 새로 고침 받아야 할 잘못된 것일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죽기보다 싫은 일이 되겠지만, 하느님을 내 삶의 중심축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법과 규정은 사람을 경직되게 하고 사랑은 사람을 부드럽게 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란 생명을 돌보는 일이요, 그 일은 사랑 없이는 할 수 없기에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본질에 가 닿는 하느님의 일이 된다. 당연히 예수님은 안식일이라 해서 사람을 살리는 일, 생명을 꽃피우는 일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수님의 사랑이 38년 동안 들것에 누워 앓던 병자를,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고 외면하여 버려진 그 생명을 살렸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 사랑이신 아버지가 일하시기에, 사랑하시기에, 당신 역시 일할 수밖에 없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쉽게 말하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른 것이 죄가 되었다.

 

유다인들은 믿음에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 열정이 눈먼 열정이었다는 것이 비극이다. 차라리 열정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깨달음의 눈을 뜨지 못한 자에게는 사랑이 독약이 되고 열정이 함정이 될 수도 있음을...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신다. 예수님도 일하신다. 아버지가 지금껏 사랑하시고 생명을 살리시고 계신다. 예수님도 사랑하시고 생명을 살리시고 계신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에.

오늘은 우리도 여태 일하고 계시는 예수님과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일, 생명을 살리는 일, 아파하고 힘겨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아 주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은 봄비가 온다고 하네요. 봄비를 머금은 세상의 모든 생명이 맘껏 기지개를 켜고 새 세상과 만나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 우리 모두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숨쉬고 움직이고 살아가게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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