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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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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3-23 22:59

사순 5주 화요일

2,091
김오석 라이문도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8,23)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던진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유다인들은 ‘아래’에서 왔고 예수님은 ‘위’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아래로 지칭된 이 세상은 욕망과 죄, 거짓과 위선으로 진리를 볼 수 없는 세상, 곧 죄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속한 이들은 예수님의 진면목을 볼 수 없고, 당연히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신뢰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 보다 상대방에 대한 더 큰 찬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안기듯 모든 것을 내 맡기는 행위입니다. 거꾸로 불신은 내 힘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느님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고, 그래서 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행위입니다. 중간 중간 적당히 하느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봉헌도 하고 희생도 하고 기도도 하는 것이 신앙이라 생각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그야말로 우상숭배요, 전형적인 미신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현재 우리의 신앙이 우상숭배와 미신에 더 가깝지 않나요? 화들짝 놀라는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나는 채우기 위해 사는가, 아니면 비우기 위해 사는가? 나는 힘을 갖기 위해 애쓰는가, 아니면 힘을 빼기 위해 애쓰는가?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는가, 아니면 주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가? 오늘의 묵상거리로 삼았으면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자기 뜻을 온전히 비워내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그분의 뜻으로 나를 채워가는 과정입니다. 날마다 자신을 비우고 주님께서 그 자리에 들어오시도록 힘을 빼는 과정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나의 고백이 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내가 하느님으로 충만할 때 하느님께서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나를 통해 시작하고 완성하실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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