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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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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3-25 00:07

주님탄생예고대축일(15.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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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석 라이문도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가 1,28)

 

연례 피정 이틀째 밤이다. 월요일 저녁에 시작해 토요일 아침 식사로 끝나니 사실 온전한 날 수로 따진다면 5박 4일인 격이다. 그만큼 짧게 느껴진다. 피정 첫날인 어제 동료 사제 한 분(조 진섭 요셉 신부님: 호평동 주임)이 선종하셨다는 슬픈 소식이 날아들었다. 피정 중인 신부님들 모두가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렇듯 모호하고 뒤섞여 있음을 실감하면서... 나 역시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건너가야 할 죽음의 실재가 이렇게 다가올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다. 가브리엘 천사가 나자렛 처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알려준 날을 기념한다. 하느님 강생의 위대한 드라마가 첫 출발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시골 처녀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루가 1,38)라는 위대한 순명의 ‘예’로써 하느님 구원 사업의 협조자가 되었다.

우리는 늘 성모님의 놀라운 믿음의 ‘예’를 경탄하고 찬양한다. 그러나 오늘 천사의 인사를 보면 성모님을 ‘믿음이 뛰어난 이여!’라고 부르지 않고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고 하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모님의 “예”는 그분의 강인한 의지나 성품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열매였다는 뜻이다.

 

믿음을 우리 스스로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많이 기도하고 많이 봉헌하고, 많이 희생하고 봉사하면 믿음이 생겨난다고 말이다. 물론 그런 사람이 하느님을 뜨겁게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고 하느님의 은총과 은혜를 감지할 확률이 확연히 뛰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도 믿음은 자비롭고 너그러운 하느님의 선물일 뿐이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참된 믿음은 생겨나지 않는다. 선택의 권한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믿음이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놀라운 믿음을 고백하고 증거할 수 있는 은총은 우리 안에 이미 충만하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넘치도록 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미사 때 마다 4번씩 반복하는 이 인사는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들에게 하는 천사의 축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성모님은 당신의 은총을 믿음의 ‘예’로 순명함으로써, 말씀이신 주님을 당신 태 안에 간직하게 되었고, 이제 구원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여인이 되신다.

우리 역시 우리 안에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을 믿음의 “예”로 고백하고 증거함으로써 우리 마음 안에 말씀의 씨앗을 간직하고 키워나가는 수고와 정성을 쏟아야 하겠다.

12월 25일 성탄을 준비하는 시작일은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주는 아쉬움과 슬픔 그러나 새로운 탄생의 설레임이 희망을 기약하며 교차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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