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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3-26 21:51

사순 5주 금요일

2,177
김오석 라이문도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 하였다.”(요한 10,31)

 

유다인들은 분노했다. 왜 그럴까?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선언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권위 있는 가르침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빵의 기적과 치유의 표징 앞에 놀라기도 했지만, 넘을 수 없는 선이라고 생각했던 야훼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더구나 그분과 당신이 하나라고 선언하는 지점에서 견딜 수 없었다. 유다인들의 생각은 하느님과 인간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율법에 따라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변할 수 없는 구별을 무시하는 예수님은 당연히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었다.

 

고정 관념의 틀 속에 갇혀 변화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자는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돌을 집어 들고 폭력에 의존하는 법이다. 교만과 무지는 돌을 집어 들게 한다. 눈 멈은 아주 쉽게 의로운 자를 박해한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예레 20,10:오늘의 독서)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내가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을 믿어라”(요한 10,38) 말이나 몸짓에 현혹되지 말지어다. 열매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고, 서로 용서하여 화해토록 이끌고, 서로 사랑하게 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와 찬양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일들이요, 그 일들의 열매다.

 

그러나 믿음 없이 교만과 눈 멈으로 돌을 집어 드는 폭력적 불신 앞에서 예수님의 선택은 오직 하나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요한 10,40) 믿음 없는 곳에 예수님은 계시지 않는다. 사람들 안에 담겨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독선적 자기 확신에 매여 있는 사람 안에는 하느님의 영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그들을 떠나신다. 생명이 그들을 떠나신다. 진리가 그들을 떠나신다. 빛이 그들을 떠나신다.

죽음이 그들을 덮는다. 거짓이 그들을 속인다. 어둠이 그들을 삼킨다. 예수께서 그들을 떠나신다.(이 현주 저 <요한복음 묵상>에서 인용)

 

나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과 함께 서서 돌을 맞는 사람인가? 아니면 돌을 집어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 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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