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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4-10 00:37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2,377
김오석 라이문도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갈릴래아로 낙향한 제자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허공만 바라보며 서로 눈이 마주치는 것을 한사코 피하는 어색한 긴장이 한동안 지속된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말한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다른 제자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하고 모두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

하긴 무엇을 한들 제대로 일이 되겠는가? 좌절과 실망 속에 던져진 그물에 걸려들 눈먼 고기는 없다.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공동체의 노력은 열매 없는 쭉정이 밖에 남는 것이 없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요한 21,6)라는 예수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다. 언젠가 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상황을 우리는 본 적이 있다. 그렇다. 바로 예수님께서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실 때 하셨던 말씀과 상황이 꼭 같다.

바야흐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제자들을 당신의 동반자로 부르시고 계신다.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리라 하시던 그 약속을 이제 이루시려고 하시는 순간이다.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초대하시는 부활한 예수님 모습이 오늘은 무척 정겹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숯불을 피우시곤 이제 막 잡은 고기 몇 마리를 석쇠에 올려 구우시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예수님께서 마련하신 잘 구워진 생선과 빵으로 꾸며진 성찬의 식탁을 상상해 보라!

와서 아침을 먹어라.” 밤새도록 헛손질만 했던 제자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시려 몸소 음식을 장만하신 주님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지는 밥상이다. 스승을 잃고 죄의식과 두려움, 그리고 자기 비참함 속에 허우적대며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죽음의 골짜기를 헤맨 제자들의 공허한 마음을 충만케 하는 주님께서 준비한 식탁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가가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요한 21,13)고 오늘 복음은 전한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생명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음식을 먹는 일이란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고, 가족들은 더불어 함께 밥을 먹음으로써 서로가 서로의 생명을 위하고 살리는 운명공동체임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예수님은 늘 함께 제자들과 식사를 함께 했고, 최후의 만찬 때 당신의 몸과 피로 지울 수 없는 영원한 식사, 성체성사를 이루셨고, 이제 스승의 고난과 죽음의 현장을 외면하고 겁에 질려 도망쳤던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어 함께 식사를 나눔으로써, 옛 기억을 되살릴 뿐만 아니라 서로가 갈릴 수 없는 한 몸으로서의 운명공동체임을 인식시키고, 그들이 당신을 대신하여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할 일꾼임을 재확인하고 가르치고 계신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가? 기쁨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는가?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시는 성찬례의 초대에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응답하는가?

나는 누구와 아침을 먹기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초대하는가?

우리 가족 모두가 한 자리에 둘러 앉아 예수님께서 나눠주시는 빵과 고기를 받아먹고 있음을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가?

오늘 나는 어떤 이를 나의 식탁에 초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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