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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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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마당

2022-06-22 20:27

우리집 성가정이 된 이야기

421
정계순 엘리사벳

그때 나에게는 흑백 아날로그 카메라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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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옆지기 유스티노


 남편 의 직업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25년을 떨어져 살았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부부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던 어느날, `딩동`~~기다리던 남편이었다.
다음날이 내 생일이어서 날자를 맞추어 열흘 만에 온 것이다.
들어오면서 대뜸, "여보, 당신에게 좋은 생일 선물을 가지고 왔어!" 라고 말을 하였다.
`어떤 선물을 일까?` 하고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나 교리 받아." 라고 말하는것이 아닌가? ` 우와~~이 무슨 횡재이며, 이 무슨 경사란 말인가?`
나에게는 분명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값지고 기쁜 선물이었다.
현장에서의 생활을 이해 하기에 세례 받으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의 그 기분이 지금도 전해진다. 

1981년 부활 때에 나는 두 아이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남편은 우리들의 세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영세 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남편은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하루에 세번을 꼬박꼬박 전화를 했다.
단체활동을 하면서 남편의 전화를 받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핸폰이 없던 시절이니 집을 떠나면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당신, 지아비가 중요해? 하느님이 중요해? " 삐삐가 있던 시절이었는데,
삐삐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텐데 지금 생각해도 조금은 내가 미련했던것 같다.
그랬던 그가 타곳에서 교리를 받는다니, 내가 어찌 기뻐하지않을 수 있겠는가?
증평과 진천 사이의 도로공사를 하고 있었던 때였는데, 사연인즉 이러하다.

지금부터는 남편의 입장에서 써 내려간다.

『현장 사정으로 인하여 두 달을 공사가 중단되고 있었다.
어느날, 도로를 살피고 있었는데, 자가용이 지나가가다 멈추어서 후진을 하더니,
로만칼러를(Roman Clloar)한 사제 한 분이 내려서 나에게로 다가 왔다.
신부님은 나에게 "현장에서 고생하십니다." 라고 말씀을 건네시며
"저는 이곳 진천 성당에 있는 박종흠 신부입니다. 한 번 성당에 놀러 오세요." 라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다.
출발하는 신부님 차 뒷 모습에다 대고 "우리 가족도 성당 다닙니다." 라고 중얼거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날이었다.
사무실에서 밖을 내다 보다가 갑자기 그때 그 신부님 생각이 문득 났다.
그래서 물어 물어 성당을 찾아가 보았다. 찾아간 진천 성당은 생각보다 초라해 보였다.
성당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니, 어두침침한 성당 안에 유일하게 앞면에 빨간 조그만 등이 켜져 있었다.
조금 있으려니 수녀님 한분이 들어 오셨다.
`우와, 너무나 예쁘게 생기셨다.....`
그날부터 시간만 되면 신부님이 아니라 그 예쁘게 생긴 수녀님을 보러 성당엘 가곤 했다.
그러다가 신부님한테 붙잡혀 사제관에서 교리를 받게되었다.』...
이것이 유스티노가 나에게 한 고백이었다.

나중에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그때 신부님께서는 배티 성지를 만들고 계셨다.
터도 닦아야 하고 십사처로 쓸 연자맷돌도 옮겨야 하고
여러가지 일들이 많았는데, 돈은 없으시고 고민 중이셨다.
그러다가 마침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우리집 양반을 보시고 말을 건네신 것이었다.
교리 중에 터도 닦아드리고, 맷돌도 옮겨 드렸다고 하니,
이 모두가 하느님의 안배였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부르시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하다.

눈이 펄펄 내리던 12월24일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는 그 날,
드디어 우리 가족은 성가정이 되었다.
그것도 시골에 그림같이 예쁘고 조그만 진천 성당에서 말이다.
더구나 우리 집은 같은 해에 부활절과 성탄절에 성가정이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었다.
열 명의 영세자 가운데 우리 유스티노가 끼어 앉아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서로가 신앙관이 많이 달랐지만, 다른 견해를 반박하거나 넘나들지 않고 지헤로 대처하며 살았다.
남편의 신앙생활에 대해 주일을 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었다.
수십년을 그리 지냈는데, 지난 번 성지순례를 통해 유스티노는 많은 은총을 받은 모양이다.
터어키에 성모마리아 집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단다.
요즘 유스티노는 순례때에 신부님께서 주신 묵주로 열심히 기도한다.
얼마전에는 레지오에 들어가 레지오 단원이 되었다.
어머님 기일 미사에 참례하고 돌아오려는데
어느 형제님께서 "형제님, 레지오 하시지요." 하니까 "예." 하였던 것이다.
내 상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오, 알렐루야!"


ps;

얼마 후에 술을 못하는 옆지기는 레지오를 그만두고 새멱 매일미사를 7년 정도 봉헌했다.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주일만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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